• 제목 :
  • 계절성 우울증 _ 정신과 김희철 교수
  • 작성자 :
  • kjds77
  • 작성일 :
  • 2010-04-28

쌀쌀한 바람이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하고 왠지 우수에 젖어들기도 하는 계절, 늦가을이다. 흔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한다. 가을만 되면 많은 남성들이 한번쯤 우울한 기분에 젖어 들어 고독에 빠져들기도 한다. 반대로 봄은 여자의 계절이다. 만물이 소생하면서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이 활짝 펴지면서 여성들은 마음이 들뜨고 자꾸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사람의 기분상태는 이처럼 계절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가 있다. 계절에 따라 기분 상태의 변화가 심하게 일어나는 경우를 의학적인 용어로는 ‘계절성 정동장애’(情動이란 기분을 뜻한다)라고 한다. 흔히들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정확한 의학적 용어는 아니다.

계절성 정동장애란 몇 번의 계절에 걸쳐서 규칙적으로 기분의 변화가 되풀이 되는 경우를 말한다. 문헌에 의하면 두 가지 형태가 존재한다. 가장 흔한 형은『겨울형』계절성 정동장애이다. 이는 가을철이 되면 우울해지기 시작해서 겨울이 지날 때까지 우울하다가 봄과 여름이 되면 우울이 없어진다. 반대로 드물지만『여름형』계절성 정동장애도 있다. 여름에 주로 우울해졌다가 가을과 겨울이 되면 오히려 우울이 없어지는 경우이다. 계절적으로 나타나는 우울증의 경우에는 전형적인 우울 증상과는 다르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우울한 시기에는 식욕이 오히려 증가하고 잠이 많아지며 탄수화물에 대한 갈망이 생겨 체중도 늘어난다. 의욕이 없고 무기력하며 사람들이 만나기 싫어지는 것은 보통의 우울증세와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대개 의학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들이다.
병적이지는 않지만 정상인들에게도 계절에 따른 기분의 변화는 일어날 수 있다. 최근에 미국 동북부에 위치한 대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참가자의 반 이상이 겨울철(12월~2월)에 우울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전체 참가자의 5% 이상은 계절성 정동장애의 임상적 진단에 해당되었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계절성 정동장애는 전체 성인의 약 4~12%에서 나타난다고 보고되었다. 흔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계절성 정동장애 환자들의 약 70~80%는 여자이며, 가장 흔히 발병하는 연령층은 30대이다. 일반적으로 적도에서부터 멀어지는 지역, 즉 위도가 높을수록 발병률이 증가한다고 알려졌다.
기분상태가 계절적인 변화를 보이는 것에 대해 정확한 기전은 모르지만 몇 가지 가설이 제시되었다. 가장 가능성이 있는 요인은 햇빛의 조사량(일조량)이다. 추분을 기점으로 해서 다음해 춘분이 돌아오는 반년간은 밤이 낮보다 길어져 햇빛을 받는 시간이 줄어들고 이것이 생체 내에 변화를 주어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겨울형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인위적으로 강한 빛을 쪼이면 약 80%는 상당한 치료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 치료효과가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계절적인 변동을 보이지 않는 일반 우울증 환자들은 빛 치료에 효과적이지 않다. 겨울형 우울증이 빛 치료에 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우울 증상의 원인이 멜라토닌 분비의 이상 또는 멜라토닌의 비정상적 반응 때문이라는 주장과 관련이 있다. 뇌의 송과선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은 인간의 성행동, 수면, 기분 등을 조절하는데, 이 물질은 여러 가지 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분비가 조절되며 그 중 햇빛도 주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유럽 사람들, 특히 영국인들은 1년 중에 햇빛을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구름 사이로 비치는 조그만 햇빛만 발견되어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광욕을 즐긴다. 이는 우울증을 이겨 보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행동일지도 모른다.
늦가을의 정취가 느껴지는 이때에 한번쯤은 우수에 젖어 볼 수 있겠으나 일상에 대한 흥미가 지속적으로 없어지고 이유 없이 단 음식과 탄수화물을 찾게 되고 자꾸 잠만 자고 싶어진다면 한번쯤 가을을 유독 심하게 타는 겨울형 우울증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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